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수십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롭고 안전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안과 우울감을 느끼고, 타인의 시선에 좌우되며, 때로는 알 수 없는 게으름과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현상의 뿌리는 우리가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본능과 DNA에 있습니다. 지금부터 인류 진화의 여정을 따라가며, 현대인의 다양한 고민과 행동들이 어떻게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프로그래밍의 결과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때로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정함이 살아남는다는 역설: 인류 번성의 비밀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지구상에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 외에도 최소 네 개의 다른 인간 종들이 공존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큰 두뇌와 높은 지능, 독자적인 문화적 관습, 그리고 언어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죠. 심지어 우리보다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거나 석기 도구를 더 능숙하게 사용했던 종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0만 년이 지난 지금, 지구상에 남아 있는 인간 종은 오직 우리 호모 사피엔스뿐입니다. 이들과 우리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찰스 다윈은 자연 선택 과정에서 "다정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다정함'이란 다른 개체에게 공격성을 보이기보다 호의적인 태도로 다가가고, 협력을 위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 행동 등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자연의 모든 종이 다정함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은 아니지만, 다정함을 강화하며 진화한 종들이 그렇지 않은 종들보다 확실히 더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늑대와 개는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사납고 야생적인 늑대 개체군은 멸종 위기에 처한 반면, 다정함이 강화된 개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종 중 하나가 되어 수천만 마리에 이르는 개체수를 자랑합니다. 또한 사납기로 유명한 침팬지들보다 유순한 유인원인 보노보들이 더 성공적으로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다정한 개체들이 진화 과정을 통해 상대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획득했기 때문입니다. 감정 반응이 격하지 않고 관용적인 종일수록 사회적 상호 작용에서 얻는 보상이 커졌고, 이는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 전체의 유전자 풀은 주로 다정한 개체의 DNA로 채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다정함의 진화는 신체적인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협력과 다정함을 유발하는 호르몬들이 신체 외형을 형성할 때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정한 개체만 선택적으로 번식시키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치아와 두개골의 크기가 작아지는 등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탈색소 현상'입니다. 우리 인간 종의 경우 이것이 나타난 부위가 바로 눈의 흰자위, 즉 공막이었습니다.
우리는 공막이 하얀 유일한 영장류입니다. 이 덕분에 우리는 시선을 조금만 움직여도 무엇을 보는지 타인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죠. 반면 고릴라나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모든 영장류는 공막에 색소가 있어 홍채와 뒤섞여 보입니다. 그들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넓은 흰 공막 덕분에 상대방의 눈을 통해 의도와 관심을 금세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인간의 눈이 이처럼 진화한 것은 고도의 협력적 의사소통을 위해서였다고 설명됩니다. 실제로 아기와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사람 아기는 연구자가 눈만 움직여도 시선을 따라 움직였지만, 침팬지와 보노보는 연구자의 머리 전체가 돌아갈 때만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눈맞춤을 통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발휘됩니다. 아기와 눈맞춤을 할 때 부모에게서는 사랑과 안정감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아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기분 좋은 느낌을 얻기 위해 아기와 부모는 서로 계속 눈을 맞추려 합니다. 옥시토신은 인간의 생애 전반에 걸쳐 타인과 잘 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옥시토신을 흡입한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상승하고 타인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인식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옥시토신은 두려움을 느끼는 편도체의 반응을 둔화시켜 상대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정함과 지능이 결합하자, 우리 종은 '내부 집단/외부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범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같은 집단에 속했음을 인지하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에게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지구상 오직 인간에게만 있으며, 우리의 문화와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핵심 이유입니다. 거대한 사회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었고, 이는 기술 발전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인간 종들은 외부인을 경계하는 성향이 강해 소규모 무리 생활에 그쳤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다정함을 바탕으로 무리의 규모를 100명 이상으로 늘리고 언어, 종교, 옷차림 등이 같은 집단끼리 교류하며 아이디어와 혁신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 종이 빠르게 혁신하고 더 많은 자원을 획득하여 인구를 늘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차이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정함의 진화에는 잔혹성이라는 어두운 면도 존재합니다.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에서 제거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다른 무리를 적이라고 느끼게 되면 연민과 공감은 사라지고,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옥시토신입니다. 옥시토신을 '엄마 곰 호르몬'이라 부르며, 새끼를 지키기 위해 극도로 공격적으로 변하는 엄마 곰의 모습을 통해 그 효과를 설명합니다. 이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다정한 종이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 될 수도 있는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인간 본성의 최악을 막고 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룹을 넘나드는 우정을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부끄러움의 힘: 사회적 결속의 윤활유
지구상에서 '쪽팔림'이라는 오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오직 인간뿐입니다. 왜 인간만 이런 거추장스러운 감정을 갖게 되었을까요? 사실 이 감정은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수십만 년간 우리 조상들에게 집단 생활은 필수였고, 타인과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줄 도구가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쪽팔림'이라는 감정입니다.
우리가 쪽팔림을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위에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는 화나고 아픈 감정만 느끼지만, 다른 사람, 특히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아픔보다 쪽팔림 때문에 더 괴로워집니다. 이는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가 훼손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인식할 때만 쪽팔림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반응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무리에서 소외되거나 추방당했고,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자신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걱정하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는 구성원들은 생존할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결국 쪽팔림은 사회적 결속을 원활하게 하고 사람들이 서로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며 인간의 유전자 풀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물건을 넘어뜨린 남자의 반응에 따라 그에 대한 호감도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물건을 넘어뜨리고 얼굴이 빨개지며 창피해하는 모습을 보인 남자에게 가장 큰 호감을 느꼈으며, 심지어 물건을 치우지 않고 자리를 뜬 경우에도 호감도는 높았습니다. 이는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이건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도 제 잘못을 알고 있어요.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사람이 쪽팔림을 느끼는 모습은 그 사람의 행동에 기분이 상한 주위 사람들을 달래고, 그 사람이 사회적 규칙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것이 아니며 같은 행동이 반복되지 않을 것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기능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쪽팔림이라는 괴로운 감정을 경험함으로써 다시는 이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이처럼 쪽팔림은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사회적 규범을 위반하지 않기 위한 효과적인 자기 규제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쪽팔림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면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며 스스로를 검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비웃음을 당할까 봐, 즉 남들이 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할까 봐 공개적인 발언 기회를 망설이는 것 역시 쪽팔림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쪽팔림이라는 감정을 무릅쓰고 행동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행동이나 도전이 필수적이며, 이 과정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남들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쪽팔림에 대한 두려움이 올라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온 세상이 전부 나만 주목하고 있다"고 느끼는 '스포트라이트 효과'라는 인지 편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남들은 각자 자신의 쪽팔림에 신경 쓰느라 남들의 쪽팔림까지는 살펴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남들의 시선이나 쪽팔림이라는 감정을 두려워하며 살지 말아야 합니다.
지위 게임: 인간의 끝나지 않는 서열 본능
인간은 주변 사람이 자신보다 잘 나간다는 생각이 들면 불행해집니다. 이는 우리가 본능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서열을 매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오래된 본능은 수백만 년 전 수렵 채집 사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집단 생활이 필수였고, 집단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집단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더 높은 지위를 얻을수록 더 많은 자원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력으로 얻은 지위는 오래가지 못했고, 오히려 집단 구성원들로부터 인정과 찬사를 받는 방식으로 얻은 지위가 유전자를 남기는 데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적 성공은 효과적인 생존과 동의어가 되었고, 남들의 인정과 찬사를 갈망하는 욕구가 우리의 DNA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에도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 필수적입니다. 지위는 자신이 집단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얻을 수 있었는데,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했습니다. 첫째, 남들이 좋아하거나 남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혜택을 제공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 새로운 기술 개발, 뛰어난 스포츠 능력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특성상 타인의 능력 그 자체보다는 능력을 상징할 만한 '단서'만 보고도 그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유추합니다. 예를 들어 좋은 차, 좋은 집, 비싼 시계 등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단서를 가진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다고 결론지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싼 명품이나 차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그들이 실제 성공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성공의 상징만으로도 성공한 사람들이 받는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거나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는 식으로 '집단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사람이 명성이 급격하게 높아지거나, 유명인이 거액을 기부하면 대중의 호감도가 상승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이처럼 능력 있는 모습이나 이타적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해낸 사람들은 좋은 평판을 얻고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함으로써 생존과 번식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며, 자연히 그들의 유전자가 인간의 유전자 풀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본능에는 단점도 존재합니다. 뇌가 평판에 따른 지위를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은 좋은 평판을 상실하면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평판의 상실은 자살과도 연결될 정도로 강력한 고통을 유발합니다. 타인의 인정과 찬사가 인간에게 이토록 중요하기에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열광합니다. 그들의 행동을 배우고, 그들의 옷차림과 말투를 따라 하며, 그들이 읽은 책을 따라 읽으려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 곁에서 지위를 상승시키고자 하는 본능 때문입니다.
동시에 인간은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으스대는 꼴을 좋아하지 않기도 합니다. 유명인, CEO, 정치인 등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 불편한 감정은 인류 전체가 가진 보편적인 감정입니다. 한 연구에서는 인기가 많고 부유하며 똑똑한 사람의 글을 읽으면 고통을 지각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고, 그 인물이 추락하는 글을 읽으면 쾌락 영역이 켜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심은 자신과 동일한 게임에 속한 경쟁자가 성공했을 때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유능한 사람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공존시킵니다. 하지만 보통은 잘 나가는 사람을 모방하고 그들에게 아첨하며 순응하고자 하는 인지 체계가 그들에 대한 반감을 압도하기 때문에,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열광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기와 질투도 마음 한편에 존재하며, 그들이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라도 저지른다면 사람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을 우리와 평등한 존재로 끌어내리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위 게임 속에서 좀 더 수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들도 있습니다. 첫째, 명상입니다. 명상은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 사회적 인정이나 성공에 대한 욕구에서 오는 괴로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둘째, 남들을 판단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입니다. 남을 도덕적으로 비난함으로써 자신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증명하려는 것은 쉬운 지위 획득 방법이지만, 진정한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분노만 부추깁니다. 남들의 단점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발전에 집중하는 것이 행복을 위해 더 바람직합니다. 셋째, 우리가 지위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치열한 경쟁에서 한 발 떨어져 거리를 두고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불안, 우울, 게으름: 생존을 위한 뇌의 디폴트 값
우리가 "왜 이렇게 자주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거지?"라고 생각할 때마다 "혹시 내 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면,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가 아주 건강한 뇌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우리 뇌의 '디폴트 값'입니다. 약 25만 년 전, 인류의 절반이 10대가 되기 전에 사망하던 동아프리카의 혹독한 환경에서 '이브'라는 여성의 후손인 우리는 맹수에게 잡아먹히거나,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굶어 죽는 일 없이 살아남은 조상의 후손입니다.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는 우리가 생존에 유리한 '정신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진화 역사 속에서 '불안'과 '걱정'은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왜 시도 때도 없이 불안을 느끼는 걸까요? 불안은 배고픔이나 피로처럼 인간이 지닌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특성입니다. 이는 심리적으로 강한 불편함을 느끼는 상태로, 특정 상황에서 가벼운 불안부터 온갖 재앙을 상상하며 불안해하는 등 강도와 종류는 다양합니다. 불안은 일종의 '선제적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질책을 당하지도 않았는데 출근해서 상사에게 깨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바로 불안입니다. 스트레스는 위협 때문에 촉발되지만, 불안은 잠재적 위협을 떠올림으로써 촉발됩니다.
우리 몸의 편도체는 주변 위험을 탐지하는 역할을 하며, 위험할지 모르는 뭔가를 감지하고 경고를 울립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투쟁-도피' 모드로 돌입하여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맥박과 호흡이 증가합니다. 뇌는 이 신호를 실제로 위험이 임박했다는 증거로 잘못 해석하고 더 적극적으로 작동하여 불안을 심화시킵니다.
이러한 쓸모없어 보이는 시스템을 우리가 갖게 된 이유는 인류가 사바나 초원에 살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그것이 바람 소리일 가능성이 크지만 맹수일 가능성도 약간 존재합니다. 이때 두려움을 느껴 도망친다면 약 100칼로리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맹수였다면,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입니다. 결국 맹수일 확률이 낮을지라도 매번 도망치는 편이 나았고, 뇌는 필요한 것보다 천 배 더 자주 스트레스 대응 시스템을 작동시키게 되었습니다. 늘 위험을 경계하고 대비책을 생각하는 이러한 경향이 바로 '불안'입니다. 우리가 요즘처럼 안전한 세상에서도 자주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의 경보 시스템이 인류 절반이 10대가 되기도 전에 죽던 세상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불안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며, 오히려 불안을 겪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것입니다. 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행복이 아닌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불안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요? 책에서는 여러 해결책 중 '운동'을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꼽습니다. 운동은 부정적인 마음을 해독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심장 박동수와 혈압은 불안 증상과 함께 증가하지만, 심장은 운동을 할 때도 빠르고 격렬하게 뜁니다. 운동이 끝나면 심장은 다시 차분해지고 엔도르핀과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운동은 뇌에 "심박수가 늘어나고 혈압이 높아지는 건 불안과 공황이 몰려온다는 의미가 아니야. 긍정적인 느낌이 뒤따른다는 신호지"라고 가르쳐 주는 셈입니다. 규칙적인 달리기를 한 학생들은 심박수가 높아져도 더는 초조해하지 않았으며, 심장의 두근거림을 불안의 신호가 아닌 긍정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체 활동은 자신감과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고 신체의 모든 장기를 튼튼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운동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왜 우리는 달리기 트랙은 외면하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선택하고 싶어 하는 충동을 느낄까요? 왜 뇌는 자신에게 명백히 좋은 행동을 거부할까요? 또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가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달달한 간식과 몸에 안 좋은 음식들을 잔뜩 먹어치우고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게으르고 음식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걸까요?
이 역설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생존입니다. 둘째,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굶주림은 우리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 요인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칼로리는 우리가 자주 누리기 힘든 호사였으므로, 눈앞의 음식을 어떻게든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반면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이 칼로리를 언제든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지만, 진화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아직 이러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사바나 초원에서는 뇌가 "아, 배고파. 어디 먹을 것 좀 없나?"라고 외쳤을 것이고, 우리가 마트에 있을 때도 뇌는 여전히 그렇게 외칩니다. 당이 잔뜩 진열된 통로에 섰을 때 우리는 조상들이 사바나에서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나무를 발견했을 때와 똑같이 반응하며 "당장 다 먹어치워"라고 외칩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충분한 칼로리를 누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칼로리에 대한 갈망을 제어하는 정지 버튼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한때 인간에게는 생존 기제였던 것이 이제는 함정이 되어, 우리는 얻을 수 있는 칼로리의 양에 제한이 없어지자 계속 먹고 또 먹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뇌는 우리가 눈앞의 칼로리를 모조리 먹어치우기를 원하는 동시에, 우리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것도 원합니다. 불필요한 칼로리를 태워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죠.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기간의 99.9% 동안 인간이 비만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음식이 부족할 때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뚱뚱한 뱃살을 갖고 사는 호사를 누려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신체는 "넌 지금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확보했어. 그러니까 30년 후에 심근경색으로 죽지 않으려면 밖에 나가서 뛰어"라고 말해 줄 방어 기제를 발달시키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과체중을 경험한 적이 없었고, 대다수는 심근경색이 오는 나이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사 위험을 피하기 위해 칼로리 높은 음식을 갈망하도록 진화했고, 소중한 칼로리를 되도록 아끼기 위해 앉아서 쉬는 것을 추구하도록 진화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게으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우리는 시시때때로 우울하거나 불안해하거나, 애초에 게으를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래밍된 존재들입니다. 지금이야 이런 것들이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이지만, 이 특성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우리를 생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운동을 하기 싫어하고 자주 부정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거나 음식의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운동이든 다이어트든 멘탈 관리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자괴감에 너무 오랫동안 빠지지 말고 이것을 떠올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은 쉽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걸 알고 나면 과도한 자책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노력하는 일들은 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입니다. 세상은 분명히 변했고, 우리는 여기에 적응해서 최대한 잘,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니까요.
도파민과 미스터리: 예측 오류가 주는 짜릿함
설탕이나 섹스, 마약 말고 인간의 도파민을 가장 폭발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미스터리'입니다. 1926년 영국을 떠들썩하게 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실종 사건은 이 미스터리의 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30대 작가였던 애거사가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언론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수천 명의 아마추어 탐정까지 나섰지만 그녀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경찰은 자살을 의심했고, 남편은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1일 후, 그녀는 한 호텔에서 발견되었고, 이 모든 것이 차기작을 구상하던 그녀의 자작극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애거사 크리스티는 무명 작가에서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 거듭났습니다.
인간이 이처럼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에 왜 속절없이 매력을 느끼는지는 도파민의 주된 기능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도파민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우리의 관심을 어디에 배분할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세상을 살피고 가장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때 사용되는 신경 물질이며, '즐겁다'는 느낌은 뇌가 우리에게 '저길 보라'고 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도파민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상 가능한 뻔한 정보는 결코 아닙니다. 그보다는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 재미, 혹은 신경과학자들이 '예측 오류'라고 이름 붙인 재미가 도파민을 가장 크게 자극합니다. 뇌세포가 뜻밖의 사건에 민감한 이유는 그것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아주 엄청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불가사의한 실종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든, 눈을 뗄 수 없는 탐정 소설이든, 이러한 글은 도파민계를 계속 흥분시키고 우리는 원시적인 보상 없이도 계속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인간의 뇌는 항상 문제 해결과 향후 예측을 시도하며 패턴을 만드는 기계이지만,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예측 오류, 즉 예상하지 못했던 보상과 뜻밖의 사실입니다. 스티븐 임과 같은 세계적인 뮤지컬 기획자들은 "예술 작품에는 뜻밖의 놀라움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놓을 수 없다"고 말했으며, 이러한 공식은 스포츠에도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모든 인기 스포츠 종목은 미스터리의 법칙을 활용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스포츠 종목이 있지만, 매 경기마다 최소 수만 명의 관중을 끌어들이는 진짜 인기 스포츠 종목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한 학자 니콜러스 크리스틴펠드는 이 종목들의 인기가 어떤 팀이 이길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분명 실력 있는 선수가 보상을 받길 바라지만, 동시에 뜻밖의 반전이나 예상 밖의 승리가 주는 짜릿한 느낌도 갈망합니다. 예를 들어 메이저리그 야구는 미국 프로 미식축구 리그인 NFL보다 경기당 신뢰도가 약 14배 떨어졌는데, 이는 미식축구는 실력이 나은 팀이 거의 항상 승리하지만 야구는 실력이 더 좋은 팀일지라도 패배하는 일이 더 잦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신 경기당 신뢰도가 낮은 종목의 경우 시즌의 길이가 매우 길어, 긴 정규 시즌 동안 야구 한 경기에서 발생하는 무작위성의 균형이 맞춰지게 됩니다. 이처럼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들은 미스터리를 최대한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이는 선수의 실력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는 까다로운 경기 규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정리해 보면, 인간의 도파민을 폭발시키는 것은 우리의 기대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깨뜨리는 예측 오류를 마주하는 것이며,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음악이나 영화, 책, 예술 작품, 인기 스포츠는 모두 예외 없이 이 공식을 충족시킵니다.
주의력 방황과 마음챙김: 산만한 뇌를 다스리는 법
책을 한 페이지 읽었는데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거나,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책상에 앉았는데 몇 분 만에 딴생각에 빠져드는 경험, 누구나 해봤을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의 50%를 딴생각을 하는 데 사용하며, 이렇게 딴생각을 하고 난 뒤에는 보통 기분이 나빠집니다. 아까운 시간을 날렸고, 불쾌한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기분이 안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의 '주의력'과 직결됩니다. 주의력은 마치 플래시 불빛과 같아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지점만 더 밝아지고 강조돼 보입니다. 우리는 이 플래시 불빛을 외부를 향하게 할 수도 있고, 우리 내면의 생각이나 기억을 향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눈앞의 과제에 집중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렵고, 우리는 왜 늘 쉽게 산만해지는 걸까요?
사실 이 문제는 언제나 인류의 고민거리였습니다. 수천 년 전, 420년에 살았던 중세 수도사들도 오로지 신만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며 불평했고, 점심 식사 생각이나 섹스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들은 가족과 관계를 끊고 재산까지 포기한 수도사들이었지만, 세속적인 관계를 끊으면 잡념도 사라져 주의가 산만해지지 않으리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효과가 거의 없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휴대 전화를 무음으로 해놓고 조용한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등 외부의 방해 요인을 모조리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하나의 과제에 계속 집중하는 것을 어려워했습니다. 그들의 뇌는 쉽게 산만해졌고 눈앞의 과제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걱정이나 후회, 욕구, 계획 같은 것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왜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을 겪는 걸까요?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1만 2천 년 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숲속에서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찾는 원시 인류를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의 양식을 구하려면 주위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때 만약 열매를 찾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주위에 호랑이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호랑이의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의 마음이 방황했다면, 호랑이의 기척을 미리 알아차리고 제때 몸을 피해 목숨을 부지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원시 인류들 중에 집중을 하다가 말다가 하고, 딴생각에 빠져 고개를 돌리고, 방황하는 마음 때문에 눈앞의 과제에서 멀어지곤 했던 개체들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살아남아 쉽게 산만해지는 그들의 유전자를 자손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결국 하나의 일에 쉽게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산만해지는 뇌는 우리 조상들의 똑똑한 생존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우리의 뇌는 원래 방황하도록 만들어졌고, 쉽게 산만해지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뇌의 기본적인 특성입니다.
우리는 뇌가 순간적으로 다른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계속 산만한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해결책은 바로 우리 자신의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주의력이 길을 잃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주의력을 우리가 원하는 것으로 재빨리 매끄럽게 도로 가져다 놓는 것, 이것이 바로 주의력 훈련의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을 '메타 자각'이라고 부릅니다. 메타 자각은 나의 내면의 풍경을 지켜볼 수 있는 능력으로, 내면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 욕구 등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불안이나 두려움, 걱정에 사로잡혀 그 순간에 적절하지 않은 주의력 상태로 빨려 들어갑니다. 하지만 메타 자각이 있을 때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경험의 내용을 인지하고, 그 내용이 우리의 목표와 일치하는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에게 "지금 나는 무엇을 인지하고 있지?", "지금 내가 주의를 활용하는 방식이 나의 목표에 부합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일에서 성과를 내고 싶다면 이러한 메타 자각 능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주의 집중력이 필요한 과제를 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주의가 어디에 있는지 자각을 잘할수록 성과가 좋았습니다. 반면 마음의 방황이 늘어날수록 메타 자각은 감소하고 성과는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경로를 수정해서 주의를 당면 과제로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메타 자각을 높여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마음챙김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챙김은 불교의 전통적인 명상법을 심신 안정과 심리 치료 관점에서 재구성한 명상법입니다. 실제로 구글은 2007년부터 사내 명상 강좌를 운영하고 있고, 빌 게이츠도 주의를 집중하고 생각들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명상을 한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역시 20년 넘게 명상을 해온 명상 예찬론자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마음챙김 수련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상태가 줄어드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마음챙김 훈련이 메타 자각을 증진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챙김 훈련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RAIN 명상법'을 설명하겠습니다.
- R (Recognize):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어깨와 얼굴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욕망을 그저 알아차립니다.
- A (Allow): 그 파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욕망을 무시하거나 억누르려 하지 말고, 그저 "왔구나"라고 말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만으로도 괜찮습니다.
- I (Investigate): "지금 내 몸에서 뭐가 느껴지지?"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열심히 생각하기보다는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포착하고, 신체의 감각, 감정, 생각을 관찰하고 그것이 나에게 오도록 놓아둡니다.
- N (Nurture): 자신의 경험을 기록합니다. 짧은 문구나 단어를 써서 간단하게 기록하고, 욕망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따라갑니다. 만약 집중이 흐트러졌다면 "지금 내 몸에서 뭐가 느껴지지?"라는 질문을 되풀이하고 같은 과정을 반복합니다.
주의력 연구 분야의 권위자는 명상 초보자를 위한 현실적인 처방전으로, 주의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최소 복용량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낸 마음챙김 훈련의 최소 복용량은 '주 5일, 하루 12분간 4주 동안' 마음챙김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보다 길게 훈련할수록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명상이 처음인 분들이라면 일단 하루 12분씩 마음챙김 훈련을 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중독의 굴레와 마음챙김: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는 과학적 방법
스마트폰 중독이든 마약 중독이든, 모든 종류의 중독은 동일한 원리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성 폭식을 하는 사람이나 매번 금연을 결심하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저에 깔린 메커니즘은 둘 다 동일합니다. 중독의 정의는 '부작용이 있는데도 뭔가를 계속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다이어트 중인데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달달한 간식이 당기거나,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기분이 울적할 때는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게 되는 것들도 모두 중독에 해당합니다. 아마 우리 대부분은 최소 한 가지 이상의 중독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나쁜 습관인 줄 알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걸까요? 그리고 이 나쁜 습관의 고리에서 대체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인류에게는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보존된 강력한 학습법이 하나 있습니다. 이를 '보상에 의한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이 보상에 의한 학습의 원리를 알면 우리가 왜 어떤 물질이나 행동에 중독되고 결국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렵 채집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뇌는 "칼로리=생존"이라고 외치며 그 음식을 먹게 합니다. 특히 설탕을 섭취할 때 이런 기분 좋은 느낌은 더 강렬해졌습니다. 몸은 뇌에 "지금 먹고 있는 것을 기억해. 그게 어디에 있었는지도 기억하고"라는 신호를 보내고, 뇌는 이 기억을 저장합니다. 이것이 '계기-행동-보상'의 간단한 루프입니다.
이 방법은 분명 생존에 도움이 됐습니다. 칼로리 높은 음식의 위치를 쉽게 기억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후 우리의 뇌는 "다음번에 기분이 안 좋을 땐 뭔가 맛있는 걸 먹어 보는 게 어때? 그럼 기분이 좋아질 거 아니야"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뇌가 시키는 대로 시도하고, 그것이 좋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화가 나거나 슬플 때 달달한 음식을 먹으면 정말로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배가 고프다는 신체적 신호 대신 '우울하다'는 감정적 신호가 계기로 작용해 음식을 먹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그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뇌에서는 해당 경로가 강화됩니다. 나중에는 심한 스트레스가 계기로 작용해 단 것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라고 재촉하게 됩니다. 감정적 신호가 트리거로 작용해 음식을 먹게 만든 것이죠.
이럴 때 보통 우리는 이 나쁜 습관을 의지력으로 없애려고 하지만 결과는 매번 실패합니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가장 먼저 스위치가 꺼지는 부위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의식적인 행동 조절 능력이 가장 뛰어난 부위인 '전전두엽'이기 때문입니다. 이 스위치가 꺼지고 나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충동에 의해 움직이게 됩니다. 그래서 기분이 다운되면 이 울적한 기분에서 즉시 벗어나기 위해 달콤한 케이크나 재미있는 영상, 혹은 담배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러한 행동들을 하면 우리는 불쾌한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는데, 이것이 바로 이 행동들에 대한 보상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보상에 의한 학습 메커니즘은 현실을 회피하고 고통을 마비시키고 불쾌한 감정을 덮어 버리기 위해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쾌한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부정적 강화'라고 부릅니다.
정신과 의사는 이러한 보상에 의한 학습 메커니즘과 환자들의 부정적 강화 현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중독 문제를 치료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하다 마음챙김 명상을 치료에 적용하기로 합니다. 마음챙김은 불교의 전통적 명상법을 심신 안정과 심리 치료 관점에서 재구성한 명상법으로, 스스로의 생각이나 감정 등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분투하지 않으며, 수용하는 태도를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서 생겨나는 자각을 뜻합니다. 이 마음챙김 훈련이 금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니코틴 중독은 중독 중에서도 가장 치료가 어려운 편에 속하며, 의존성은 코카인보다도 높고 모르핀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따라서 니코틴 중독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종류의 중독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중독의 작동 원리는 모두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를 비롯한 연구진은 약물 복용 없는 무료 금연 프로그램 광고를 내 참가자들을 모집했고, 이들을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누어 배정했습니다. 한 집단은 마음챙김 수행을 받았고, 다른 집단은 학계 표준 치료 요법인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마음챙김 집단은 첫 수업에서 습관 고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담배 한 대를 피울 때마다 그 행동이 강화된다는 점을 인지했습니다. 연구진은 그날 저녁 참가자들에게 집에 가서 담배를 피울 것을 제시했는데, 대신 담배를 피울 때는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며 피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즉, 흡연 욕구를 불러일으킨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담배를 피울 때의 기분은 어떤지를 잘 관찰하라고 한 것입니다.
3일 뒤, 참가자들은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많은 참가자가 자신의 흡연 행위가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잘못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예를 들어 커피의 쓴맛을 덜 느끼려고 담배를 피우던 한 남성은 이 단순한 사실을 알아차린 것만으로 흡연을 양치질로 대체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담배를 피울 때 주위를 기울였더니 어땠나요?"라는 질문에 참가자들의 다수는 눈이 확 트이는 경험이었다고 대답하며, 담배의 맛이 얼마나 고약한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냄새는 썩은 치즈 같고 맛은 화학 약품 같아요"라고 말한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마음챙김 집단의 흡연자들에게 욕망에 휩싸이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점과 욕망을 외면하거나 억누르려고 하는 대신 욕망에 올라타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RAIN 명상법을 배웠습니다. 참가자들은 욕망이 느껴질 때마다 마음챙김을 활용하도록 교육받았고, 이 연구는 2년간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최종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4주 동안 마음챙김 훈련을 받은 참가자들의 금연 성공률이 표준 금연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두 배에 달했으며, 금연에 성공한 마음챙김 집단 참가자들은 거의 전원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금연 상태를 계속 유지한 반면, 대조군의 피험자 중 다수는 다시 담배를 피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두 집단에서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의 수는 무려 다섯 배나 차이가 났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마음챙김 집단의 사람들은 단순히 욕망을 참는 대신 자신의 습관 고리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실제로 얻는 보상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보고, 자신이 중독된 행동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습관이 들어 있거나 중독된 상태라면 여기에서 빠져나오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욕망을 느끼면 우리는 그 욕망에 빨려 들어가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계기-행동-보상 루프에 따라 반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욕망을 느낀다고 해서 모두 해로운 습관대로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욕망에 빨려 들어갈 때만이 습관 고리가 작동할 수 있습니다. 욕망에 빨려 들어간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극단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일이 벌어질 때 그것에 휘둘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욕망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육체와 정신의 일부가 수축하고 좁아지고 줄어들고 닫히는 느낌을 받습니다.
반면 명상을 하면 자신의 욕망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을 훈련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 그것에 휘말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챙김은 단지 호기심을 갖고 우리의 몸과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입니다. 욕망이 올라올 때 그것이 올라오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저 호기심을 갖고 아무런 제지 없이 지켜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욕망은 저절로 가라앉고, 기존의 계기-행동-보상 루프는 점점 약화됩니다. 마음챙김 집단의 참가자들은 이런 식으로 니코틴 중독에서 서서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 연애의 역설: Z세대가 연애를 하지 않는 세 가지 이유
인기가 많아야 살아남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꾸미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할까요? 사실 답은 간단합니다. 이성에게 관심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욕구는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입니다. 우리가 의식조차 못 하고 있지만, 외모를 가꾸고, 말투를 다듬고, 열심히 일하는 그 모든 행동의 밑바닥에는 '내가 이성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단 하나의 동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연애를 넘어 인간이라는 종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해 온 전략입니다. 진화 심리학의 대가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짝짓기 전략'이라고 말합니다. 이 전략이 통하지 못한 유전자는 도태되었고, 성공한 사람들만이 후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우리입니다.
데이비드 버스 교수에 따르면, 문화권을 막론하고 남성이나 여성이 선호하는 상대 이성의 특징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먼저 여성에게 인기 있는 남성의 특징을 살펴보면, 여성은 남성적인 얼굴(단단한 턱, 발달된 눈썹뼈), 넓은 어깨와 좁아지는 골반의 역삼각형 상체, 자신보다 크면서 평균보다 큰 키, 우수한 운동 능력을 가진 남성을 선호했습니다. 또한 여성은 일반적으로 자신보다 2~5살 정도 연상의 남성을 선호했습니다.
두 번째로 여성에게 인기 있는 남성의 특성은 바로 '재정적 유망성'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돈 많은 남성'이 아니라, 장차 미래에 재정적으로 안정적일 가능성이 있는지, 즉 '자질'을 본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상대 남성이 야망이 있거나 추진력이 있거나 근면 성실하다면 본능적으로 더 호감을 느끼는데, 이는 진화론적으로 이러한 자질들이 성공적인 자원 획득(재정적 유망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이러한 자원을 아무에게나 나누는 남성이 아니라 '파트너 여성에게만 나누는 남성'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남성은 자원을 획득할 능력이 있고, 그 자원을 아내에게만 헌신할 의지가 있습니다. 자기 일에 몰두하고 목표 지향적이며 동시에 충실한 헌신까지 보이는 남성은 이상형에 가깝습니다. 반대로 게으르거나 하루 종일 게임만 하면서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특징은 낮은 재정적 유망성을 뜻하며, 이런 모습에 호감을 느끼는 여성은 거의 없습니다.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이러한 특성들이 우리 여성 조상들이 진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임신과 출산, 양육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데 성공한 여성들은 자신이 취약한 임신 기간에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고, 다른 폭력적인 남성으로부터 자신과 아이들을 보호해 주며, 자식에게 충분한 자원을 투입할 능력이 있는 배우자를 선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자질을 미리 알 수 있는 지표들이 바로 앞서 언급된 특징들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남성에게 인기 있는 여성의 특징입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바로 '몸매'입니다. 남성들은 날씬한 허리와 그와 대비되는 큰 골반을 가진 여성(허리-엉덩이 비율 WHR이 0.7 정도 되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여성스러운 얼굴'입니다. 작은 턱과 작은 코, 높은 눈썹, 큰 눈을 가진 얼굴이 여성스러운 얼굴로 인식됩니다. 또한 남성들은 깨끗한 피부와 좋은 머릿결을 가진 여성도 선호했습니다. 이처럼 남성들이 선호하는 여성의 특징은 여성들이 남성에게서 선호하는 특징과 달리 외모에 상당히 치우쳐져 있습니다. 이는 진화론적으로 보았을 때 당연합니다. 남성은 출산을 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하기 위해서는 파트너의 생식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여성의 생식 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체적 특징, 즉 나이와 건강입니다.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남성들이 선호하는 여성의 특징들이 모두 우수한 생식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날씬한 허리와 큰 골반은 우수한 생식 능력을 나타내며, 여성스러운 얼굴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관련되어 역시 여성의 생식 능력과 연관됩니다. 깨끗한 피부는 양호한 건강 상태를 나타내고, 찰랑거리는 머릿결은 우수한 가임 능력을 나타내는 신호가 됩니다.
정리해 보면, 자신의 DNA를 남기기 위한 진화 과정에서 여성 조상들은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신체적 보호와 안정적인 자원 공급이 필요했으므로 그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남성을 선호하게 되었고, 남성 조상들은 자신들이 아이를 낳을 수는 없으니 아이를 잘 낳아 줄 수 있는 여성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파트너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후대에 효과적으로 유전자를 남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론적 매력 공식은 과연 현실에서도 통할까요? 현대 사회에서는 이 공식을 통째로 뒤엎는 장면이 생각보다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연애 프로그램에서 자산이 많은 남성들이 외모가 공개되자 호감도가 급락하며 선택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고, 유명 PD는 남녀가 이성을 보는 기준에 "외모가 절대적이다"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현대 여성들이 남성의 능력이나 경제력보다 외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반대로 현대 남성들도 여성의 외모뿐만 아니라 직업 안정성과 같은 능력을 함께 보는 경우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진화적 불일치'로 설명됩니다. 전통적으로 인기 있었던 사람과 요즘 현대에 인기 있는 사람이 달라지는 현상은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를 진화의 속도가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남성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력을 갖기 시작한 것은 3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진화는 최소 수천 년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므로, 수십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사에서는 맞는 이야기였겠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급변한 세상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쩐지 동떨어진 얘기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실제로 연구를 통해서도 사회가 발달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전통적인 성 역할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고, 그에 따라 남녀가 선호하는 배우자의 특징이 점차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과 지위를 중시했지만, 현대 여성들은 자신이 경제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연애에서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며 경제력보다 성격, 정서적 안정성, 유머 감각, 가치관의 일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화적 불일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현실의 연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별 감정 없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설레기 시작하거나, 객관적으로는 그냥 평범한데 이상하게 자꾸 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평생 만날 수 있는 사람의 레벨이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그 기준조차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 알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2022년에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19세에서 34세 청년 중 65.5%가 현재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미혼인 2, 30대 청년 중 3분의 2가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은 "연애하고 싶긴 한데 제가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굳이 만나고 싶진 않아요", "먹고 살기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어요"와 같은 이유를 댑니다. 한마디로 지금 삶이 엄청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큰 불만도 없기 때문에 연애가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와 연애를 하는 것에 당장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집값은 터무니없이 높고, 근로 시간은 무지막지하게 길고, 무한 경쟁에 겨우 대학 가면 또 취업하느라 고생하는 이런 사회에서 누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겠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한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이 이 현상을 좀 더 심화시킨 측면이 분명 있겠지만, 이것을 청년들이 연애하지 않는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2, 30대가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전 지구적으로 연애를 피하는 시대가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연애 상대가 될 사람은 마치 무한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과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고, SNS에서는 수십 명의 새로운 이성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불과 몇십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며, 수십만 년에 달하는 인류 진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일어난 급격한 변화에 해당합니다. 인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간은 지금처럼 수천, 수만 명 중에서 연애 상대를 고를 수 없었습니다. 대신 수십 명 규모의 작은 공동체 안에서 태어나 인접한 몇몇 집단의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갔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류에게는 평생 접할 수 있는 이성의 수가 거의 정해져 있었고, 그 가능성 있는 이성의 수는 고작 2, 30명 수준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간은 원래 이 정도로 제한된 인구 풀 안에서만 짝을 찾도록 진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현대 사회, 그것도 도시에 사는 우리는 하루에도 길거리에서 수십 수백 명과 스쳐 지나가고, 범위를 미래로까지 넓혀 보면 수천 명, 어쩌면 수만 명 중에서 내 짝을 찾으려고 합니다. 또한 마음 한구석에는 늘 '어딘가에 나랑 진짜 잘 맞는, 이 사람보다 더 나은 그런 사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선택의 역설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어츠가 처음 제시한 개념인 선택의 역설이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 경우 오히려 의사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들고, 적은 선택지를 가졌을 때보다 더 안 좋은 선택을 하거나 심지어 선택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언뜻 생각했을 때 선택지는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오히려 더 불행해졌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 실험에서는 24종류의 잼이 놓인 진열대보다 6종류의 잼만 놓인 진열대에서 소비자들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이처럼 선택 가능한 옵션이 한눈에 들어올 때 우리는 결정을 내리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최적의 결정, 즉 손해를 보거나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고려할 사항은 점점 늘어나고 그에 따라 최고의 결정을 내리기란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이것은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너무 많은 이성 중에서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을 고르려다 보니 아예 아무도 고르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친 고민 끝에 차라리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현상 유지를 택하는 이른바 '결정 마비'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원래 많아야 2, 30명 중에서 짝을 고르도록 진화한 종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수천 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골라야 합니다. 수천 명의 이성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계속 더 나은 사람을 상상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환경에 맞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 속에 던져진 우리는 자꾸 망설이게 되고, 눈앞의 상대에게 만족하기 어려워지며, 심지어는 "아예 안 해"하고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생겨버리는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뿐 아니라 SNS나 유튜브에서도 수많은 또래 이성들, 그리고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처럼 비현실적으로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까지 매일 보게 됩니다. 이렇게 비교 대상이 과도하게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높이도 올라가게 됩니다. 과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괜찮다고 느끼는 기준이 훨씬 까다로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요즘 2, 30대들이 연애를 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와 이어집니다.
둘째, '대리 만족의 시대'입니다.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눈을 낮추면 만날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연애를 하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를 대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이러한 말이 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과거와 달리 크게 애쓰지 않아도 우리의 욕구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도파민은 흔히 쾌락을 주는 신경 전달 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쾌락을 기대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 부여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어떠한 보상이 예측될 때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동기 부여입니다. 예를 들어 연애 초기에 상대를 생각하며 두근거리거나 짜릿한 기분이 드는 것도 도파민을 비롯한 다양한 신경 전달 물질이 뇌에서 작용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이 감정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 우리는 뭔가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루 종일 그 사람을 생각한다거나, 연락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더 자주 만나려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이렇게 직접 행동을 하지 않아도 쉽게 도파민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과 인터넷 덕분입니다. 사실 이것은 연애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바야흐로 '대리 만족의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우리는 유튜브로 먹방이나 게임 영상을 보고, 언박싱 영상을 소비하며, 넷플릭스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다른 사람이 한 체험과 그들이 느낀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의 경험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치 직접 해 본 것처럼 느끼고 그 안에서 대리 만족을 얻기도 합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특정 장면에 강하게 몰입하거나 감정 이입할 때, 그것이 우리가 직접 한 행동이 아니더라도 뇌의 보상 회로가 활성화되며 도파민이 분비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보는 것만으로도 욕구가 일정 부분 충족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구가 충족되었으니 굳이 힘들게 행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방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짧은 시간 안에 빠르고 손쉽게 쾌락을 얻을 수 있는데, 누가 일부러 현실에서 애써 노력하고 싶겠습니까? 과거에는 이 정도의 쾌락을 얻으려면 이성을 유혹하든, 음식을 찾아 나서든, 뭔가 행동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방 안에 편히 누워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봐도 포르노나 먹방을 포함해 우리에게 다양한 쾌감을 주는 콘텐츠들이 넘쳐납니다.
사회와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접할 수 있는 이성의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고, 또 과거처럼 직접 행동하지 않더라도 쉽게 쾌락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수십만 년에 걸쳐 적응해 온 생물학적 환경과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진화의 속도가 현대 사회의 발전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현상을 '진화적 불일치'라고 합니다.
셋째, '결혼 및 연애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부모님 세대와 지금의 2, 30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결혼을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결혼 적령기가 되었는데도 아직 짝이 없으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중매나 소개가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결혼을 미루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매우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세대는 결혼해야 한다는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이 결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의 영역이 되었고, 연애 역시 인생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삶의 선택지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변화는 "연애는 꼭 해야 하는 게 아니다" 또는 "굳이 안 해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연애에 대한 동기 자체가 줄어든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2, 30대 청년들이 연애를 하지 않게 된 것은 단순히 바빠서도, 성격이나 외모가 문제여서도 아닙니다. 본래 인간은 2, 30명 안에서 짝을 고르도록 진화했는데, 지금은 수천 명, 많으면 수만 명 중에 고르려다 보니 오히려 선택이 더 어려워졌고, 어쩌다 선택을 한다 하더라도 만족도 역시 낮아졌습니다. 또한 유튜브나 SNS 같은 것으로 쉽게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굳이 힘들게 직접 행동하지 않아도 욕구가 충족됩니다. 게다가 예전처럼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압력도 사라지면서 연애 자체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많은 사람들이 연애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 된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우리가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이 필요했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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