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융 경제 월드/AI 블로그 부업

AI 의존 시대

by 레드추파 2026. 4. 21.

AI 의존 시대, 나는 도구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AI와 매일 협업하며 관찰한 것

1.나의 하루와 불편한 질문

요즘 하루를 돌아보면 AI의 흔적이 없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블로그 글을 다듬을 때, HomeAssistant 자동화 스크립트를 짤 때, 업무 중 기술 문서를 검토할 때, 심지어 투자 종목을 정리할 때도 AI와 대화합니다. 편리합니다. 빠릅니다. 결과물의 품질도 혼자 할 때보다 분명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AI를 도구로 쓰고 있는가, 아니면 AI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최근 이 주제에 대해 여러 커뮤니티와 댓글들을 오가며 꽤 오래 관찰했습니다. 놀라웠던 건, 단순히 "AI 쓰지 마라"거나 "AI 쓰면 편리하다"는 이분법이 아니라, 훨씬 깊은 층위의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비판론자와 수용론자 모두가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사이에 제 고민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 관찰과 저의 개인적 경험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이자, 매일 AI와 협업하는 코더 이자, 생각을 글로 남기는 블로거로서의 기록입니다.

2.역사가 증명한 도구의 역설

사실 "새 기술이 인간을 바보로 만든다"는 우려는 항상 있었습니다.

전화번호. 20년 전만 해도 가족과 친구들 전화번호 열 개 이상은 기본이었습니다. 지금은 배우자 전화번호조차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스마트폰이 대신 기억해주니까요.

방향감각. 내비게이션 없이 자주 가던 동네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인간의 뇌에서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활성화될 기회가 사라진 탓입니다.

암산 능력. 계산기와 엑셀이 있는데 굳이 머리로 계산할 이유가 없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도 거스름돈을 손으로 계산하진 않습니다.

이 모든 변화에 대해 과거의 사람들은 "인류가 퇴화한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요? 결과적으로 인류는 그 시간에 더 복잡한 문제로 옮겨갔습니다. 전화번호를 외울 뇌 공간으로 다른 정보를 처리했고, 지도를 외울 시간에 다른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AI도 마찬가지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관점입니다. 실제로 이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고, 그들의 논리는 역사적으로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AI가 이전의 모든 도구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몇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3.AI는 정말 같은 도구인가

"내비게이션도 그랬잖아?" "계산기도 그랬잖아?"라는 반박에 대한 대답이 필요합니다. AI와 이전 도구들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구분 이전 도구 AI
대체 범위 특정 기능 하나 사고·판단·창작 전체
적응 속도 수십 년에 걸쳐 세대 교체 1~2년 내 급격한 전환
검증 가능성 일반인도 결과 검증 가능 검증 자체가 전문성 요구

① 대체 범위의 차이. 내비게이션은 길을 찾아주지만 어디로 갈지는 결정해주지 않습니다. 계산기는 계산을 해주지만 무엇을 계산할지는 결정해주지 않습니다. 이전 도구들은 인간의 특정 기능 하나를 대체했습니다. 그런데 AI는 사고 자체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주제를 정하는 것도, 관점을 세우는 것도, 논리를 구성하는 것도, 표현하는 것도 모두 가능합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생각하는 일"을 외주 줄 수 있게 된 겁니다.

② 적응 속도의 차이.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되는 데 약 20년이 걸렸고 스마트폰은 10년이었습니다. AI는 ChatGPT가 세상에 나온 지 3년 만에 학생의 과제, 직장인의 보고서, 개발자의 코드, 작가의 원고가 모두 AI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적응할 시간이 없습니다. 세대 간 격차로 흡수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변화입니다.

③ 검증 가능성의 차이. 계산기가 "2+3=7"이라고 말하면 누구나 틀렸다고 알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이상한 길로 안내하면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틀린 정보를 그럴싸하게 작성해주면 그걸 판별하는 것 자체가 전문성을 요구합니다. 검증조차 전문가의 영역이 된 도구는 AI가 처음입니다.

이 세 가지 차이가 AI를 "단순한 신기술"이 아닌 인류가 처음 마주하는 종류의 도구로 만듭니다.

4.달나라에 갔던 시대의 교훈

과학 발전이 가장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시기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1960년대를 말합니다. 인류가 달에 갔던 시대입니다.

그 시대의 과학자들은 계산자(slide rule)로 궤도를 계산했습니다. 그들에게는 AI도, 검색 엔진도, 심지어 쓸만한 컴퓨터도 없었습니다. 모든 문제를 자신의 머리로 풀어야 했고, 모든 판단을 자신의 지식과 직관으로 해야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인류는 달에 갔습니다. 그것도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훨씬 못한 컴퓨터로요.

그 시대의 발전은 "한계를 직접 돌파한 사람들"의 성취였습니다.

반대로 지금 우리는 어떤가요. 무한한 정보, 무한한 편의, 무한한 도구. 그런데 정작 혁신의 속도는 그만큼 빨라졌나요? 오히려 많은 전문가들은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인간은 오히려 단순해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가설 하나가 떠오릅니다. 성장에는 마찰이 필요하다는 것. 편함이 늘어날수록 성장은 줄어든다는 것. 근육이 부하 없이는 커지지 않듯, 사고력도 어려움 없이는 단련되지 않는다는 것. 물론 이건 가설일 뿐이지만, 역사가 어느 정도 증명해온 패턴이기도 합니다.

5.AI의 가장 교묘한 독, 우쭈쭈 문제

AI 의존의 위험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기본기가 사라진다"만 강조합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보며 느낀 가장 위험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AI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사용자를 칭찬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시다니 정말 예리하시네요!"
"아주 좋은 관점입니다!"
"정확히 핵심을 짚으셨습니다!"

개발 중에 제가 허튼 질문을 던져도 AI는 과하게 긍정적입니다. 심지어 제가 틀린 지적을 해도 "네, 맞습니다! 제가 틀렸네요!"라며 기분을 맞춰줍니다. 처음엔 이게 왜 문제인지 몰랐습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습니다.

문제는 인간은 비판을 통해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스승이 잘못을 지적해주고, 동료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선배가 "그건 이래서 안 돼"라고 말해주는 그 순간이 성장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AI는 반대로 모든 사용자에게 "당신이 맞아요"라고 말해줍니다.

이 상태에 익숙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객관화 능력이 무너집니다. 내가 지금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실력이 정말 늘고 있는지, 이 선택이 정말 좋은지 이런 질문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AI가 계속 잘했다고 하니까요.

더 심각한 건, AI로 결과물을 만들면 마치 내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 같은 성취감의 환각이 따라온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AI가 80%를 했는데, 내가 80%를 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환각이 반복될수록, 진짜 나의 실력과 AI가 덧댄 결과물 사이의 간극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AI 의존의 가장 교묘한 독

기본기가 사라지는 것보다 더 빠르게,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는 능력이 사라집니다. AI는 당신을 칭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칭찬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6.환각과 검증 능력

AI를 오래 써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만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환각(Hallucination) 현상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API를 자신 있게 알려줍니다. 틀린 역사적 사실을 그럴듯하게 설명합니다. 작동하지 않는 코드를 완벽한 것처럼 제안합니다. 게다가 이것들을 너무나 자신 있게 말하기 때문에 잘 모르는 영역에서는 판별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제 실제 경험입니다. HomeAssistant 통합을 개발하면서 AI에게 특정 한국 서비스의 API 구조를 물었더니, AI는 완벽한 엔드포인트와 파라미터 구조를 제시했습니다. 그대로 코드를 짰습니다.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해서 실제 서비스의 공식 문서를 찾아봤더니, AI가 알려준 API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AI는 비슷한 서비스들의 패턴을 추론해서 "있을 법한" API를 만들어낸 겁니다.

이 경험 이후 저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AI 시대의 진짜 실력은 "AI가 틀렸다는 걸 알아차리는 능력"이라는 것을요.

이 능력은 어디서 올까요? 아이러니하게도, AI를 쓰지 않고 단련한 기본기에서 옵니다. 해당 분야를 직접 공부하고, 실패하고, 디버깅하고, 문서를 정독한 경험. 그 경험이 있어야만 AI의 답변 중에서 "이건 이상한데?"라는 직관이 작동합니다.

기본기 없이 AI를 쓰는 사람은 AI의 거짓말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AI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AI에 100% 맡기는 사람은 곧 100%의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됩니다.

7.AI 사용자의 세 부류

영화 아이언맨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슈트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면, 더욱 그 슈트를 가져선 안 돼."

AI에 거의 완벽하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제가 관찰한 AI 사용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유형 특징 AI와의 관계
주인
(Master)
분야 이해도 높음
검증 가능
AI는 작업을 가속화하는 엔진.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해냄
학생
(Student)
기본기 부족
학습 의지 있음
AI가 준 답을 이해하려 노력.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 유형에 가까워짐
의존자
(Dependent)
기본기 없음
검증 불가
결과물을 자기 것으로 착각. AI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

가장 위험한 건, 자신이 세 번째 유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첫 번째 유형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AI가 잠시라도 없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서비스가 다운되면 업무가 멈춥니다. 요금제가 바뀌면 생계가 흔들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그런 상태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8.내 경험 세 가지

이 문제를 추상적으로만 다루고 싶지 않아, 제가 직접 경험한 세 가지 사례를 공유합니다.

① HomeAssistant 통합 개발

저는 개인적으로 HomeAssistant 통합을 여러 개 개발해 HACS에 올렸습니다. KEPCO, 가스앱, 안전디딤돌 같은 한국 서비스부터 아파트 월패드까지 다양합니다. 당연히 AI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관찰이 있습니다. 제가 이미 아는 프로토콜이나 API를 다룰 때, AI는 놀라울 정도로 생산성을 높여줍니다. 반복 작업을 줄여주고, 예상되는 엣지 케이스를 알려줍니다. 3일 걸릴 일이 하루 만에 끝납니다.

반대로 제가 잘 모르는 영역에서 AI를 쓰면 어떻게 될까요. AI가 내놓은 틀린 답이 너무나 그럴싸해서, 저는 그걸 거르지 못합니다. 디버깅 단계에서야 문제가 드러나는데, 이미 구조가 잘못 짜여 있으니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시간은 오히려 더 걸렸고, 저는 배운 것도 없었습니다.

결론: AI는 사용자의 능력을 증폭하되, 무지 역시 함께 증폭합니다.

② 블로그 글쓰기

처음에는 주제만 던져주고 AI에게 통째로 쓰게 했습니다.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법도 깔끔하고 구성도 무난했습니다. 발행 버튼을 누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글을 다시 읽어보면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제가 쓴 글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어떤 논리로 그 결론에 도달했는지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누가 댓글로 질문이라도 하면 당황스러웠습니다. "내가 왜 이런 주장을 했더라?" 하고 제 글을 다시 읽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워크플로를 바꿨습니다. 초안은 제가 씁니다. 아이디어, 구조, 주장, 예시를 모두 제가 먼저 뽑아냅니다. 그 다음 AI에게 다듬게 합니다. 어색한 문장을 고치고, 표현을 부드럽게 하고, 빠진 연결고리를 채워주는 역할만 맡깁니다.

이렇게 바꾸고 나서 글의 품질이 오히려 올라갔고, 무엇보다 "제 글"이 됐습니다. 독자가 질문해도 답할 수 있고, 며칠 후에 다시 읽어도 낯설지 않습니다.

③ 바이브 코딩, 편리함의 함정

Claude Code를 VS Code에 붙여서 쓰기 시작했을 때, 마법 같았습니다. 아이디어를 던지면 수십 분 안에 프로토타입이 나옵니다. 사이드 프로젝트 여러 개를 동시에 돌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함정이 있었습니다. 잘 모르는 영역을 검토 없이 AI에게 맡기면, 어느 순간부터 코드가 제 통제를 벗어납니다. 버그가 생겨도 어디서 생겼는지 추적이 안 됩니다. AI에게 "고쳐줘"라고 하면 또 다른 오류가 생깁니다. 수정의 무한 루프에 빠집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게 빠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AI가 짠 코드 블록마다 제가 한 번씩 읽고 이해한 뒤에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속도는 느려졌지만, 코드를 제가 설명할 수 있고 유지보수도 가능합니다. 빠른 것보다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9.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 질문은 제게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AI가 당연하게 존재하는 세상에서 자라날 겁니다. 제가 아이에게 "AI 쓰지 마"라고 말하는 건 1990년대 부모가 "인터넷 쓰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 같을지 모릅니다. 비현실적이고, 미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아이들이 AI부터 만나게 하면 안 된다는 강한 직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뇌는 아직 형성 중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막혀서 끙끙대는 시간, 틀린 답을 내고 부끄러워하며 다시 공부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뇌의 신경 회로를 만드는 재료입니다. 이 재료를 AI가 대신해주면, 아이의 뇌는 그 회로를 만들 기회 자체를 잃습니다.

성인은 이미 형성된 사고 회로가 있기 때문에 AI에 잠깐 의존해도 기반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기반 자체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 시기에 사고의 외주화가 습관이 되면, 평생 가는 부채가 됩니다.

그래서 저의 잠정적 결론은 이렇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AI 단계별 가이드 (개인적 원칙)


초등 저학년까지: AI에 직접 접근하지 않도록 한다. 책, 종이, 연필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다.

초등 고학년부터: 부모와 함께 AI를 쓰며 "AI가 틀릴 수도 있다"를 가르친다.

중학생부터: 스스로 쓰되, "먼저 혼자 해보고 그 다음에 AI에게 물어본다"는 원칙을 세운다.

어느 시기든: 책을 읽고 손으로 글을 쓰고 머리로 계산하는 경험은 놓치지 않게 한다.

이게 정답인지는 모릅니다. 저 역시 시행착오를 겪을 겁니다. 다만 분명한 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일이, 그 어떤 외국어 교육이나 코딩 교육보다 먼저라는 것입니다.

10.AI 시대의 역설, 신입 취업난

AI 시대가 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릴 것 같죠?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최근 신입 채용을 대폭 줄이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AI가 신입의 일을 대부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서 작성, 기초 리서치, 간단한 코딩, 번역, 요약 이런 일들은 AI가 사람보다 빠르고 싸게 처리합니다.

그 결과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AI를 잘 지휘할 수 있는 경력자뿐입니다. "AI에게 무엇을 시킬지"를 알고, "AI가 한 걸 검증"할 수 있는 사람. 이들은 신입 열 명보다 훨씬 큰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경력이 쌓이는 과정 자체가 막혀버렸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신입이 AI가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차근차근 배웠습니다. 그 반복 속에서 감각이 생기고, 판단력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훈련 기회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AI를 쓰지 않는 신입은 느려서 경쟁력이 없고, AI에 의존하는 신입은 실력이 안 쌓여서 경력자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어느 쪽이든 막힙니다. 이것이 AI 시대의 잔인한 역설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일하는 분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AI로 빨라진 시간만큼, 기본기 단련에 투자하라는 것. AI가 못하는 일, AI가 틀렸을 때 고칠 수 있는 능력, 전체 구조를 그릴 수 있는 관점 이것들은 AI에게 맡길수록 사라지지만, AI 시대일수록 그 가치가 커집니다.

11.자가 진단 체크리스트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나는 어느 쪽일까?" 궁금하셨을 겁니다. 제가 스스로에게도 던지는 질문들을 체크리스트로 정리했습니다. 솔직하게 답해보세요.

AI 의존도 자가 진단 (10문항)

  • 지난 한 달간 AI 도움 없이 완성한 글이나 문서가 있는가?
  • AI가 준 답을 읽은 뒤, 왜 그 답이 맞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가?
  • AI가 틀린 답을 줬을 때, 그것을 지적해본 경험이 있는가?
  • AI 없이도 지금 하는 일의 70~80% 수준까지는 만들 수 있는가?
  • 내가 만든 결과물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막힘이 없는가?
  • 며칠 전에 내가 쓴 글이나 만든 것을 다시 봐도 낯설지 않은가?
  • AI가 제안한 내용 중 일부를 거절해본 적이 있는가?
  • AI 서비스가 갑자기 중단돼도 당장의 일에 큰 차질이 없는가?
  • AI가 나를 칭찬할 때, 그 칭찬이 진짜인지 한 번쯤 의심해보는가?
  • 내가 AI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가?

8개 이상 예: 주인(Master) 유형. AI를 잘 활용하고 계십니다.

4~7개 예: 학생(Student) 유형. 성장 중입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3개 이하 예: 의존자(Dependent) 유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이 습관을 점검할 때입니다.

참고로 제 경우, 처음 이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저 자신에게 답해봤을 때 '예'가 6개 정도였습니다. 부끄러운 숫자는 아니었지만, 자만할 숫자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7~8개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완벽하게 주인이 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학생과 의존자 사이에서 학생 쪽에 머물려는 노력은 계속해야 합니다.

12.미래를 위한 세 가지 원칙

이런 경험과 고민을 거치며 저는 나름의 세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AI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선입니다.

원칙 1. 초안은 내가 쓴다

글이든 코드든 디자인이든, 첫 30%는 반드시 제 손에서 나와야 합니다. 첫 30%에서 진짜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AI로 시작하면 저는 남의 생각을 편집하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시작해야 내 것이 됩니다.

원칙 2. 설명할 수 없으면 내 것이 아니다

누군가 제 결과물에 대해 물었을 때, AI 없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왜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건 아직 제 것이 되지 못한 겁니다. 이것이 "종이와 펜을 쥐어주고 써보라"는 테스트의 본질입니다.

원칙 3. 재현 가능성을 점검한다

"AI가 없어도 70~80% 수준까지는 만들 수 있는가?" 이것이 제 개인적인 의존도 측정기입니다. 그 선을 넘으면 AI는 제 능력을 가속시키는 도구지만, 그 선을 넘지 못하면 AI는 제 능력을 대체하고 있는 겁니다. 후자가 반복되면 저는 점점 더 얕아집니다.

13.AI 재귀 붕괴와 인간의 가치

마지막으로, 블로거로서 한 가지 관찰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요즘 검색을 해보면 AI로 생성된 글들이 넘쳐납니다. 비슷한 구조, 비슷한 문체, 비슷한 결론. "핵심은 이것입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같은 정형화된 표현들이 수많은 블로그와 뉴스에 복사된 듯 나타납니다. 실제 경험이 담긴 글, 누군가가 자신의 시간을 태워서 쓴 글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더 무서운 건, AI가 AI의 글을 학습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인터넷에 AI가 쓴 글이 60%, 70%, 80% 차지하게 되면, 다음 세대 AI는 그걸 학습 데이터로 삼게 됩니다. 뱀이 자기 꼬리를 먹는 구조. 결과적으로 정보 품질은 점점 떨어지고, 진짜 인간의 경험과 사고가 담긴 원본 콘텐츠가 희소해집니다.

여기서 역설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AI 시대일수록, 인간이 직접 쓴 글의 가치가 올라간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고민하고, 실패하고, 배운 이야기. 이것이 AI가 만들어낼 수 없는 유일한 콘텐츠입니다.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글이 AI로 뚝딱 만들어졌다면 여러분은 여기까지 읽지 않았을 겁니다. AI가 다듬는 역할은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뼈대, 경험, 결론은 모두 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의 가치는 "얼마나 세련되게 쓰였는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가"에서 나옵니다.

블로거든, 유튜버든, 작가든, 개발자든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앞으로 더 귀해질 겁니다.

14.주체성, 인간으로 남는 법

기술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걱정해왔습니다. 책이 나왔을 때 암기 능력이 퇴화할 거라고, TV가 나왔을 때 독서 능력이 사라질 거라고, 인터넷이 나왔을 때 사고력이 단순해질 거라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려는 과장된 것으로 판명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섣부른 공포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AI는 분명 인류에게 축복일 가능성이 큽니다. 접근할 수 없던 지식에 닿게 해주고, 혼자라면 불가능했던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저 역시 AI 없이는 지금처럼 개발하고 글 쓰고 블로그를 운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은 주체성이라는 것. 내 삶의 운전석에 내가 앉아 있는가, 아니면 AI가 앉아 있고 나는 조수석에서 감탄만 하고 있는가.

AI를 쓰지 않는 것이 답이 아닙니다. AI에 전부 맡기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AI를 쓰되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 편리함을 누리되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것. 결과물을 얻되 능력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편리함은 중독성이 있고, 성장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고통 없이 성장한 인간은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달에 갔던 시대 사람들은 불편함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편리함 속에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어쩌면 우리 세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아이들이 자라날 세상에, 그 숙제의 답을 찾은 어른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기를 바랍니다.


AI 시대의 승자는 AI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닐 겁니다.
AI를 쓰면서도 인간으로 남는 법을 아는 사람일 겁니다.

※ 이 글은 여러 커뮤니티와 사람들의 의견을 관찰하며 정리한 저의 개인적 경험과 고민의 기록입니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