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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추파 월드/정책 월드

미국과 이란 전쟁 왜 싸우는걸까

by 레드추파 2026. 3. 31.

미국-이란 전쟁 완전 정리
왜 싸우는지, 왜 우리가 피해를 보는지

이란의 역사와 신정체제부터 호르무즈 봉쇄, 한국 경제 직격탄까지 한 번에 정리

2026년 3월 31일 기준

주유소에 갔더니 기름값이 갑자기 올라있다. 뉴스에서는 환율이 1,500원을 넘었다고 한다. 중동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는데, 솔직히 이란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전쟁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과 훨씬 가깝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 공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됐고, 한국 선박 26척이 페르시아만에 갇혔다. 코스피는 폭락했고, 동네 주유소는 며칠 사이에 가격을 확 올렸다.

이 글은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이란은 어떤 나라인지, 그리고 한국은 왜 이렇게 직격탄을 맞는지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정리한 글이다.


1부 — 이란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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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어떤 나라인가 — 신정 공화국의 구조

먼저 흔한 오해부터 짚고 넘어가자. 이란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

이란은 이슬람 신정 공화국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수립된 체제로, 선출된 대통령보다 위에 최고지도자(라흐바르)라는 종교 지도자가 존재한다. 군대, 사법부, 방송, 핵 프로그램까지 모든 실권이 최고지도자에게 집중되어 있다. 선거는 있지만, 후보 자격 자체를 종교 심사기관이 걸러낸다.

공산주의 vs 신정 공화국
공산주의는 무신론에 기반하며 국가가 모든 재산을 통제한다. 반면 이란의 신정 공화국은 이슬람 율법(샤리아)이 곧 법이며, 종교적 권위가 정치 권력보다 우위에 선다. 전혀 다른 체제다.

이 체제 안에서 이란의 핵심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IRGC)는 단순한 군대를 넘어 이란 경제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거대 이권 집단이다. 건설, 통신, 에너지, 금융까지 돈이 되는 사업 대부분이 그들의 손에 있다. "신의 이름으로 통치한다"는 명분 뒤에 얼마나 큰 경제 권력이 숨어있는지를 보면, 이 체제가 단순히 종교적 신념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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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의무화 — 왜 이렇게까지 강요하는가

1970년대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 중 하나였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대학에 다니는 여성이 흔했고, 서방 문화도 자유롭게 유입되던 시절이었다.

1979년 혁명 이후 이 모든 것이 뒤집혔다. 혁명 정권은 히잡 착용을 법으로 강제했고, 이를 어기면 체포와 처벌이 뒤따랐다. 이란 정권이 히잡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히 종교적 이유만이 아니다. 히잡은 "우리는 서구와 다르다"는 것을 가장 눈에 띄게 보여줄 수 있는 정치적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2022년, 이 문제가 다시 폭발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 구금 중 의문의 사망을 했고, 이란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터졌다. 이란 정부는 실탄 진압으로 응답했다.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체포됐다.

💡 핵심 포인트
이 사건은 단순한 히잡 논란이 아니었다. 억눌려 있던 이란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폭발한 것이었다. "여성, 생명, 자유(Zan, Zendegi, Azadi)"라는 시위 구호는 이란을 넘어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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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시민들이 겪는 고통 — 정권과 시민은 다르다

이 전쟁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란 정권과 이란 시민은 다르다.

이란 시민들은 수십 년간 이중의 고통을 받아왔다. 안으로는 종교 권력의 통제와 경제 붕괴, 밖으로는 국제 제재로 인한 물가 폭등과 생활고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2025년부터 2026년 초까지 이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그 고통이 한계에 달했음을 보여줬다. 하메네이 정권의 경제 실정으로 인한 초인플레이션, 청년 실업, 여성 인권 탄압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란 정부는 이번에도 유혈 진압으로 응했다. 공식 집계조차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일부 인권단체는 비공식 사망자가 훨씬 더 많다고 추산한다. 1989년 천안문 사태의 희생자 수를 상회하는 규모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란의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바깥 세상을 알고 있다. 자유가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란 거리 곳곳에서는 혁명수비대가 시민을 감시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이후 해외의 이란인들이 LA, 런던, 파리, 도쿄, 서울 등지에서 이란 정부 규탄 시위를 이어가는 반면, 이란 내부에서는 혁명수비대가 "지금 시위를 일으키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규모로 진압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라 대규모 저항이 억눌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 시민들은 지금 자국 정권의 탄압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폭탄 사이에 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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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왜 핵을 포기하지 않는가

이란에게 핵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생존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진다.

이란 지도부가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사례가 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카다피 — 두 사람 모두 핵을 갖지 않거나 포기했고, 결국 미국의 군사 개입으로 제거됐다. 이란의 논리는 단순하다. "핵이 없으면 우리도 같은 꼴이 난다."

동시에 이란은 핵 비확산 체제의 이중성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스라엘은 핵 보유가 공공연히 알려져 있으면서도 NPT(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핵을 보유하고 있다. "왜 우리만 안 되냐"는 물음은, 강대국 중심으로 설계된 국제 질서에 대한 분노를 담고 있다.

핵 확산이 인류 전체에 위험하다는 점에서 이를 막으려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기준이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한, 이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2부 — 타임라인으로 보는 미국-이란 갈등

①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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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 미국이 심어놓은 불씨

이 모든 갈등의 출발점은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이란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 총리가 영국 석유회사가 독점하던 이란 석유를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란의 자원을 이란 국민을 위해 쓰겠다는 당연한 주장이었다.

그러나 석유 이권을 지키려던 영국과 미국은 이를 묵과하지 않았다. 미국 CIA는 이란에서 쿠데타를 직접 기획·실행했고, 모사데크를 끌어내린 뒤 친미 성향의 국왕(샤)을 복권시켰다. 이란 민중이 민주적으로 선택한 지도자가 외세의 손에 의해 제거된 것이다.

💡 왜 이 사건이 중요한가
이 사건은 이란 민중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를 짓밟는다"는 인식이 이때부터 자리 잡았고, 이후 70년간의 반미 감정의 뿌리가 됐다.
②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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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 혁명, 그리고 완전한 단절

1970년대 후반, 친미 국왕의 독재와 빈부격차에 분노한 이란 민중이 폭발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국왕이 축출되고, 종교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신정 정부가 수립됐다.

혁명 직후 성난 대학생들이 테헤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외교관 52명을 444일간 억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은 구출 작전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과 이란은 공식 외교 관계를 완전히 끊었고, 그 단절은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미국의 경제 제재, 이란의 대리세력 지원, 핵 개발 의혹이 맞물리며 두 나라의 관계는 끝없이 악화됐다.

③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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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 마흐사 아미니 사건과 들끓는 민심

2022년 9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의 사망을 했다. 이란 전역에서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는 시위가 폭발했다.

이란 정부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쐈다. 수백 명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체포됐다. 이 사건은 국제 사회에 이란 정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이란 내부의 반정부 감정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④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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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 12일 전쟁, 예고된 전면전

2025년,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과 방공망을 집중 공습하는 단기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이 '12일 전쟁'은 휴전으로 끝났지만 사실상 이란의 패배였다.

핵 개발에 투입된 인재들이 다수 사망했고, 방공망은 초토화됐다. 그러나 이란 정권은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파괴된 시설을 더 깊은 지하로 옮겨 복구하기 시작했다. 완공되면 벙커버스터로도 파괴가 불가능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메네이 정권의 초인플레이션으로 민심이 폭발하면서 이란 국내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다시 터졌다. 정권은 또다시 유혈 진압으로 대응했다. 공식·비공식 사망자 수를 합치면 수만 명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올 정도였다.

💡 미국과 이스라엘의 판단
핵시설 완공이 임박했고, 이란 민심도 한계에 달했다. "지금이 아니면 없다." 2026년 전면전은 이 판단에서 비롯됐다.
⑤ 2026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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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8일 — 전면전 개시

2026년 2월 28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과 이스라엘이 '에픽 퓨리(Operation Epic Fury)' 작전을 개시해 이란을 선전포고 없이 선제 공습했다. 공식 명분은 이란 핵시설 완전 파괴와 반정부 시위대 지원이었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공습으로 사망했다. 21세기 들어 현직 국가원수가 타국 군사 작전으로 직접 사살된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미국은 지도부 제거로 이란 체제가 흔들릴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새 최고지도자로 추대되며 결사항전을 선언했다.

이란은 즉각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했다. 이스라엘 본토와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 중동 각지의 미군 기지에 미사일·드론 공격이 쏟아졌다. 전쟁은 빠르게 서아시아 전역으로 번졌다.


⑥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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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 전쟁 한 달, 지금 어디까지 왔나

개전 31일째인 2026년 3월 31일 기준 주요 현황은 다음과 같다.

  • 이란 사망자 7,000명 이상 (군인 및 민간인 포함)
  • 미군 사망자 15명, 부상자 332명
  • 레바논 민간인 사망자 1,000명 이상, 헤즈볼라 전사자 850명
  • 호르무즈 해협 사실상 봉쇄 지속
  • 이란 해군 — 개전 나흘 만에 주력 함선 대부분 격침, 궤멸적 타격
  • 이란 공군 — 팔라비 왕조 시절 도입한 F-14 등 주력 전투기 전력 대부분 손실
⚠ 미군의 이란 초등학교 오폭 사건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의 한 여자 초등학교에 토마호크 미사일이 잘못 발사되어, 수업 중이던 7~12세 여학생 175명 이상이 사망했다. 조사 결과 미군이 오래된 정보를 토대로 해당 건물을 군사 시설로 잘못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전쟁의 명분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3부 — 한국이 맞은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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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 예상 못했을까

사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이란이 오래전부터 공언해온 카드였다. 이란은 수십 년간 "미국이 우리를 공격하면 호르무즈를 닫겠다"고 반복적으로 경고해왔고, 미국과 국제 사회도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왜 전쟁을 시작했을까? 미국의 판단은 이랬다. "이란이 봉쇄를 선언해도 미 해군의 압도적인 전력으로 단기간에 해제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예상은 빗나갔다. 이란은 7개의 전략 섬에 미사일과 드론을 집중 배치하고, 기뢰까지 매설하며 해협을 실질적으로 틀어막았다.

그렇다면 이란은 왜 아무 잘못 없는 다른 나라 선박들까지 인질로 삼는 걸까?

이란의 논리는 냉혹하다. "세계 경제를 멈춰 세워야 미국을 멈출 수 있다." 미국과 직접 군사력으로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란도 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경제적 압박이다. 한국, 일본, 중국, 유럽 — 석유를 이 해협에 의존하는 모든 나라가 타격을 받으면, 그 나라들이 미국에 전쟁을 멈추라고 압박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실제로 이란은 일부 국가 선박에 대해 거액의 통행료를 위안화로 받고 통과를 허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전쟁 자금 확보와 달러 패권 흔들기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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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박 26척은 왜 갇혔나

한국 정부는 경고하지 않았을까?

외교부의 여행경보는 있었고,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 위협도 오래된 공언이었다. 업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보는 주로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이미 페르시아만 안에서 항해 중이던 화물선들에게 "즉시 나오라"는 강제력 있는 철수 명령은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은 선전포고 없이 기습적으로 시작됐다. 전쟁이 터지기 직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이 잘 되고 있다"는 발언을 반복했고, 설마 진짜 전면전이 터질 줄 몰랐던 선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선박들이 빠져나갈 골든타임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 지리적 탈출 불가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의 유일한 출구다. 남쪽으로는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의 얕은 영해가 막혀 있어 대형 유조선은 수심 문제로 우회조차 불가능하다. 전쟁이 터지는 순간, 이미 만 안에 들어와 있던 선박들은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가 됐다.

왜 그 위험한 길을 계속 이용해야 했을까?

한국은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 — 이 나라들로 향하는 길은 모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대체 항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선사 입장에서도 이미 체결된 운송 계약을 중간에 포기하면 막대한 위약금이 발생한다. 보험 문제도 복잡하다. 전쟁 위험 구역에서의 이탈 결정은 선장 단독으로 내릴 수 없고, 선사와 화주, 보험사 간의 복잡한 법적 판단이 필요하다.

결국 이 사태는 개별 선박이나 한국 정부만의 실수라기보다, 중동 에너지에 대한 구조적 의존도가 만들어낸 취약성이 드러난 것이다. 요약하면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 경고의 강제력 부재 — 위험 경보는 있었으나 강제 철수 명령은 없었다
  • 기습 개전으로 인한 골든타임 소멸 — 선전포고 없는 기습으로 대피할 시간이 없었다
  • 지리적 탈출 불가 — 호르무즈는 유일한 출구, 봉쇄 순간 탈출 자체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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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몰랐을까, 알면서도 했을까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력을 가진 미국이, 이란의 수십 년 묵은 호르무즈 봉쇄 위협을 몰랐을 리 없다. 페르시아만 안에 수천 척의 민간 선박이 있다는 것도 당연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전포고 없는 기습 공격을 택했다는 사실은, 독자 스스로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첫 번째 가능성 — 과소평가

미국은 이란이 봉쇄를 선언하더라도 압도적인 미 해군 전력으로 단기간에 해협을 뚫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민간 선박 피해는 길어야 며칠, 길어도 몇 주 안에 해소될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실제로 미국은 개전 초기 조기에 해협을 개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틀렸다.
두 번째 가능성 — 전략적 계산
더 불편한 해석이지만,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제3국 선박이 피해를 입으면 국제 사회가 이란을 압박하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전쟁 직후 각국에 호르무즈 호위 연합 참여를 요청했고, 제3국 선박 피해를 그 근거로 활용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능성 중 어느 쪽이든 한국을 포함한 제3국에 대한 사전 협의나 동의는 없었다는 점이다. 강대국의 전략적 결정이 아무 잘못 없는 다른 나라의 선원들과 경제에 직접적인 피해를 줬다. 이것이 이번 사태가 한국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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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직접 맞은 피해

이 전쟁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분야 피해 내용
선박 고립 한국 선박 26척 페르시아만 고립. 선원들 식수 부족으로 바닷물 담수화해 음용
환율·증시 코스피 급락, 매도 사이드카·서킷브레이커 반복 발동. 환율 일시 1,500원 돌파
유가 급등 휘발유·경유 단기 급등. 정부 29년 만에 석유판매 최고가 지정 제도 발동
건설 계약 해지 사우디 네옴시티 전면 취소. 삼성물산·현대건설 등 대규모 계약 모두 해지
자국민 철수 사막의 빛 작전 — 전세기·군용기로 중동 체류 국민 200여 명 긴급 귀국
방위 공백 주한미군 THAAD 포대 전량 중동 재배치. 한반도 방어 공백 우려 확대
물가 연쇄 반응 나프타 수급 차질로 쓰레기 종량제 봉투까지 사재기 발생

이번 사태는 에너지 수입 다변화, 전략비축유 확충, 분쟁 지역에 대한 더 빠른 대응 체계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한국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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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 이 전쟁은 어디로 가는가

현재 파키스탄을 중재자로 한 미국-이란 간 협상 시도가 진행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6일을 기한으로 설정하고 협상이 안 되면 발전소 공습을 재개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전망은 밝지 않다. 이란은 지상군 없이도 드론과 미사일만으로 호르무즈 해협 일대를 계속 교란할 수 있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면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의 수렁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을 포함한 동맹국들은 트럼프의 파병 요청을 일제히 거부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의 협상 자체가 지상군 투입을 위한 시간 벌기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러시아의 반사 이익

이 상황에서 가장 큰 반사 이익을 누리는 것은 러시아다. 고유가로 에너지 수출 수익이 늘었고, 국제 사회의 시선이 중동으로 쏠린 사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일부 제재는 유예되거나 해제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 전쟁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이 늘 평범한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자유를 원해서 거리로 나왔다가 총에 맞은 이란의 젊은이들, 바닷물을 마시며 귀환을 기다리는 한국 선원들, 수업 중 폭탄을 맞은 이란의 어린 여학생들.

정치와 종교, 석유와 핵이 뒤엉킨 이 갈등은 단기간에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에너지를 중동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에게, 이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환율과 기름값과 일자리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아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이다.


※ 본 글은 나무위키 '미국-이란 전쟁' 문서 및 채널A 뉴스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전쟁 상황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므로, 최신 정보는 공신력 있는 언론 매체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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